김상훈 부산일보 전 사장님과 인터뷰를 위해 연구실을 방문했습니다. 정확히 시간을 맞추어 연구실 문을 노크하고 인사를 나누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한 눈에 펼쳐지는 넓은 서재가 심장의 고동소리를 멈추게 할 만큼 감격적이었습니다.

책장의 책들이 연구실 벽면을 모두 둘러쌓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마치 어린아이들이 숨박꼭질 하기 좋게 사이사이 책장들이 줄을 서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 많고 많은 책들에 순간적으로 압도 당하는 느낌을 받고,

그만 숙연해지고 말았습니다.

권해주신 차 한잔을 손에 들고, 책장을 이곳저곳 둘러 보았습니다.

옛날 일본책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직접 쓴 책들까지 분야별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작은 도서관을 연상케 하였지요.

‘제가 이런 서재를 갖고 싶은 게 꿈입니다.’ 라는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이게 무슨 서재라고 부끄럽습니다.’라는 겸손의 말씀이 지금도 제 가슴에 생생합니다.

그곳을 서재라고 칭하기보다 ‘북 갤러리’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풍경이었습니다.

각종 책들과, 의좋게 놀고 있는 토우들, 겸손이란 바이러스를 품어내는 많은 액자들, 싱그러운 화분들, 그간 살아오신 흔적들...

‘사람이 그리워서 토우(土偶)를 모읍니다.’라는 시를 유난히 아끼신다고 하시며 읊어 주셨습니다.

사람이 그리워서

토우를 모읍니다.

案頭와 書家위에

의좋게 앉힙니다.

해마다 식구는 늘고

정도 깊어갑니다.

아침도 함께 맞고

저녁도 함께 맞고

기쁨도 슬픔도

모두 함께 합니다.

배신도 변심도 없는

토우들이 좋습니다.

사람향기 가득한 따뜻한 북 갤러리였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북 갤러리를 운영하고 싶었던 저의 눈에는 최고의 공간이었습니다.

CEO의 서재에는 또 하나의 우주공간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사람이 사는 복잡고도 다양한 세상풍경이 있었고,

자연이 사는 가식 없는 평화와 천지기운이 감도는 삼라만상이 있었고,

미래를 사는 에너지가 샘솟고 있었습니다.

‘제가 쓴 책입니다’ 하고 미리 준비한 책 한권을 드리는 손이 왠지 좀 부끄러웠습니다.

‘아이구, 좋은 책을 쓰셨군요’ 하시며 찬찬히 훑어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늘 바쁘다고 말하지요?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책을 안 읽으니 바쁠 수 밖에, 책에 다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늘 바쁘다고 하니 너무 안타까워요’

‘그러게요. 이 땅의 성공한 사람치고 책 많이 안 읽은 사람이 없잖아요? 이것은 동소고금을 막론하고 영원불변의 진리 아닐까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나면 대화가 즐겁습니다. 흥겨운 가락에 춤을 추듯 날개를 달아주지요.

마무리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제 손에 직접 쓴 책들을 싸인 해 주시며,

그때 그 기억을 되살려 책을 쓰게 된 동기와 아끼는 문장들을 직접 짚어 주시면서 책을 한 가방 챙겨 주셨습니다.

40여년을 언론사에 몸담았던 흔적들이 연구소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 하는 생각을 깊게 해 보게 되었지요.

참 좋은 곳을 다녀왔답니다. 참 좋은 느낌을 가슴에 안고 돌아오는 저의 발걸음에는 행복한 가락이 리듬을 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