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1일, 미국 건강보험 개혁법안이 통과됐다. 그러자 너나 할 것 없이 ‘대단한 업적’이라고 칭찬 일색이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특별한 건 없다.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전국민 의료보험이 도입된 것.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열광하는가? 미국 보다 앞서 의료보험이 정착된 우리나라의 선진성을 자랑하려고? 아니다. 오바마가 보여준 설득력에 또 한 번 감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세종시 문제를 오바마처럼 풀어내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바라지 않겠는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을 명쾌하게 해결해 줄 리더의 모습을.

“Yes, We Can!”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엄청난 일을 해내더니, 100년을 묵혀 온 건강보험 개혁법안까지 상하원 모두 통과시킨 오바마의 설득력. 그 비법은 뭘까? 답은 ‘인간의 본성’을 공략했다는 점. IGM의 교육프로그램인 ‘실험으로 배우는 설득의 비밀’에서 제시하는 설득의 원리를 오바마 대통령의 케이스에 대입해 풀어본다.

첫째, 오감으로 설득하라.

재미있는 실험 하나를 소개한다. 10명의 면접관에게 한 사람의 구직자를 인터뷰 한 후, 채용 여부를 결정하라는 미션을 줬다. 모든 면접관은 같은 질문을 하고, 구직자는 똑같은 대답을 한다. 면접관들이 처해있는 상황은 동일한 셈이다. 하지만 단 하나 다른 것이 있다. 바로 면접관들이 들고 있는 음료수의 종류. 다섯 명의 면접관은 차가운 콜라를 들고 있다. 반면 나머지 다섯 명은 따뜻한 커피를 들고 있다. 자, 차가운 콜라를 마신 면접관과 따뜻한 커피를 마신 면접관. 구직자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놀랍게도 차가운 콜라를 마신 면접관들은 ‘채용하지 않겠다’고 답한 반면, 따뜻한 커피를 마신 면접관들은 ‘채용하겠다’고 답했다.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따뜻한 음료수 한 잔’이 면접관들의 마음까지 너그럽게 만든 것이다. 인간은 감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오감과 같은 감성을 자극하면 행동의 변화를 쉽게 불러 올 수 있다.

그렇다면 오바마는? 그는 음료수가 아닌 비행기를 이용했다. 바로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설득에 활용한 것. 건강보험 개혁법안을 추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내부의 적, 즉 민주당 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이었다. 그리고 그 선봉에 데니스 쿠치니치 의원이 있었다. 그래서 오바마는 쿠치니치 의원을 에어포스원에 태웠다.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넓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 푸른 창공을 날며 색다른 공간에서 대화를 한다? 딱딱한 테이블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오바마가 이 원칙을 알고 그랬는지 아닌지는 별개 문제다. 실제로는 자투리 이동 시간을 적극 활용한 것뿐일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설득의 효과만큼은 분명했다. 강력하게 반대하던 쿠치니치 의원은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이 얼마나 절박한 때인지 알게 됐다. 하원 표결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떤가? 때로는 치밀한 논리보다 가슴을 움직이는 분위기가 훨씬 더 강력한 한 방이 된다.

둘째, 마음의 빚을 지게 하라.

오바마는 건강보험 개혁을 위해 국가원수로서 해선 안 될 일도 저질렀다. 인도네시아와 호주 순방을 두 차례나 연기하는 무리수를 둔 것. 그 대신 오바마가 선택한 것은 반대 의원들과의 독대였다.

오바마가 외교관례를 어기는, 정말 쉽지 않은 결정까지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빚’ 지곤 살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뜻인가? 쉬운 예를 들어보자. 당신과 그리 친하지 않은 친구가 급한 일이 있다며 백만 원만 빌려달라고 전화를 했다. 당신이라면 선뜻 빌려주겠다고 답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만약 당신이 그 친구에게 예전에 도움 받은 적이 있다면? 아마도 ‘빌려주겠다’고 답할 확률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그만큼 누군가에게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면, 그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설득 당할 확률은 커진다.

다시 오바마의 설득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반대파 의원들은 오바마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자국의 대통령이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외교관례를 어겼다는 상황은 상대에게 충분히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해외 순방 대신 선택된 반대파 의원들은 오바마를 만날 순간까지 이런 생각을 할 지 모른다. ‘나 하나 때문에 대통령이 해외 순방 연기라는 무리한 결정을 한 걸까?’ 결국 이를 통해 오바마는 심리적으로 한 단계 위에 서게 된 것. 대통령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일정을 취소하면서까지 독대를 청하는데 어떤 ‘강심장’인들 흔들리지 않겠는가.

셋째, 이익보다 손실을 강조하라.

만약 당신이 길을 가는데 누군가가 선물이라며 만 원을 준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가 만 원을 걸고 만 원을 더 받을 수 있는 내기를 제안한다. 당신이라면 내기에 참여하겠는가? 이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짜’로 생긴 만 원에 만족하며 내기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어떨까? 누군가 당신에게 선물로 2만 원을 준다. 공짜로 생긴 돈에 기뻐할 찰나, 그가 2만 원 중에서 만 원은 다시 돌려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가지고 있는 만 원을 걸고 만 원을 되찾을 수 있는 내기를 제안한다. 이 내기에는 참여하겠는가? 실험 결과 많은 사람들이 내기에 참여했다.

‘만 원을 걸고 만 원을 더 받을 수 있는 내기’라는 상황은 같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르다. 이는 2만 원을 받았다가 만 원을 뺏긴 사람들은 ‘빼앗긴 내 만 원을 되찾아야 해’라는 손실회피 심리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는 돈을 따고 잃을 확률은 똑 같은 두 가지 실험에서 손실회피라는 심리를 자극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인간의 선택은 전혀 달라진다는 뜻이다.

오바마도 이와 비슷한 설득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반대파들을 본격적으로 설득하기에 앞서, 국민 의료보험 덕분에 안정적 의료 환경이 구축된 개발도상국의 사례를 먼저 보여줬다.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미국의 현황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슈퍼파워를 갖고 있는 미국 국민들이 의료 부분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교 대상이 선진국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건강보험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미국이 ‘개도국보다도 못한’ 현실임을 강조한 것.

의료보험 도입으로 인해 좋아지는 것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다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일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잃게 되는 것이 많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교 대상’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놓치고 있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선진국으로서 응당 가져야 하는 것을 못 누리고 있다는데,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억울해서라도.

넷째, 권위를 등에 업어라.

우리는 권위 앞에 작아지는 어쩔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00대학 교수가 그랬어!”, “어제 TV뉴스에 나왔는데?” 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보다 더 큰 권위가 있을까. 오바마는 이 점에서만큼은 설득에 있어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권위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다. 단순히 ‘대통령이니까 내 말을 따라’라고 한다면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는다. 권위를 활용해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 오바마는 반대파 의원들의 논리를 들었다. 그 결과 “의료보험이 낙태 시술에 지원될 지 모른다”는 점을 걱정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때 오바마는 대통령의 권위를 ‘제대로’ 활용했다. 바로 “성폭행과 근친상간,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를 제외하고 연방 정부가 결코 낙태시술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 대통령이라는 권위를 충분히 활용, ‘대통령 행정명령’이라는 방법을 통해 상대의 문제를 해결해 줬다. 그 결과 낙태 문제로 건강 보험 찬성을 주저했던 의원들을 설득해 낼 수 있었다.

다섯째, 비슷한 타인(similar others)을 이용하라.

‘친구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친한 사람이 하면 나도 하게 된다는 것. 하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찬성한다 해도 끝까지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이럴 땐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세계적 베스트셀러 <설득의 심리학>을 쓴 치알디니 교수는 ‘비슷한 타인(similar others)’을 활용하라고 말한다. 설득해야 하는 사람과 높은 연관성을 가진 사람을 활용할 때 설득력은 훨씬 높아진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활용한 방법은 ‘의원’이라는 연관성이었다. 그는 본인이 직접 나서서 설득하기 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해 민주당내에서 높은 신뢰를 얻고 있는 지도부를 먼저 내세웠다.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같은 처지의 의원들을 적극 활용한 것. 이와 함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반대파의 선봉에 있었던 쿠치니치 의원을 같은 편으로 돌려 놓은 것도 큰 효과를 봤다. 쿠치니치가 찬성 입장을 공개 선언하면서, 표결 전날까지 7명의 의원들이 추가로 찬성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저렇게 극렬하게 반대하던 사람이 찬성으로 돌아선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거야’란 생각을 하게 되면서 반대파 의원들의 마음도 움직였던 것이다.

좋은 설득가란?

좋은 설득가는 단순히 말주변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설득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이 왜 마음을 바꾸는지, 그 뿌리를 알아야 진정한 설득이 가능하다.

지금 우리는 수많은 갈등 속에 살고 있다. 세종시, 4대강 등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굵직굵직한 문제가 너무 많다. 문제는 갈등을 풀어내기 위해 상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다. 제대로 된 설득을 위해 필요한 것은 뭘까? 답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다. 당신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만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 즉 ‘리더’라면 이를 빨리 깨달아야 한다.